파리 근교 여행을 계획하면서 내가 가보고 싶었던 1순위 여행지가 바로 여기,
<오베르 쉬르 우아즈>다.
용필이 오빠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 속 한 대목
"나 보다 더 외롭게 살다간 고흐라는 사람도 있었는데..."라는 구절처럼
살아 생전 재능에 대한 인정은 커녕 정신병과 지독한 가난,고독에 시달리던
빈센트 반 고흐가 끝내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곳이 바로 이 곳.
사실 그가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보낸 기간은 70일에 불과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는 무려 80여점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고흐의 작품을 사랑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마을을 찾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비가 온다던 예보와는 달리 우리가 출발할 때는 하늘이 맑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산을 챙겨넣고 생라자르역으로 향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가는 기차는 생라자르역에서 떠나는데
한 번 환승해야하고
소요 시간은 1시간이 20분 정도 걸렸다.
나비고가 있으면 추가 요금 없이 이용가능.
나비고에 관한 내용은 여기를 참고~
2018/06/08 - [길 위에서 세상 읽기 (해외)/프랑스 18'] - 파리에서 근교 여행 계획이 있다면 반드시 "나비고"-나비고 이용방법, 구입장소, 가격
오베르 쉬르 우아즈역에 도착한 시각은 1시 반쯤.
생라자르역을 떠날 때만 해도 파랗던 하늘에 짙은 먹구름이 몰려와 있었다.
역시 변화무쌍한 파리의 날씨.
날씨 탓인지 아직은 비수기인 탓인지
주말임에도 기차역과 주변이 무척 한적했다.
기차역에서 내려 지하도로 길을 건너는데
지하도 안에 그려진 그림이 너무 예뻐서 찰칵.
역을 나온 우리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바로 관광안내소.
인터넷을 통해 지도나 정보 검색을 쉽게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아날로그 세대라서 그런지
관광 안내소에서 주는 자료나 지도를 보는 것이 더 편리하고 유용하다고 생각해
처음 가는 곳에서는 언제나 관광안내소부터 찾게된다.
그런데, 이 곳은 관광 안내 뿐만 아니라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쉼터 역할과 기념품 판매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직원 분이 정말 친절해서
지도를 보며 우리가 가야할 곳과 동선에 대해 잘 설명해주어서
시작부터 기분이 좋았다.
기념품 매장을 둘러보다 고흐가 이 곳에서 그린 "오베르 교회"와 "까마귀가 나는 밀밭"
그림 엽서를 구입하고 본격적인 탐방에 나섰다.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 풍경.
마을 주민들은 다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간혹 관광객들만 오갈 뿐
동네 주민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수수하고 아담한 집들이 늘어선 주택가를 지나다가
장미 넝쿨이 너무 예뻐서 또 한 컷 찰칵.
관광안내소에서 조금 걸어가니 언덕 위에 오베르 교회가 나타났다.
고흐의 그림은 실제 교회의 모습과 형태 면에서는 같지만
푸른 하늘색과 붉은 지붕의 대비, 고흐 특유의 강렬한 붓자국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그림 속에 표현된 두 갈래 길은
실제로도 한 쪽은 마을을 향해서 다른 한 쪽은 마을의 공동 묘지를 향해서 나있다.
한 때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목사가 되기를 꿈꾸며 목회일을 한 적 있는 고흐는
왜 종교에서 구원을 찾지 못했을까?
왜 자신의 그림 속 아낙네처럼 마을로 이르는 길로 가지않고
무덤으로 가는 길을 택했을까?
살아생전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고흐의 고독과 슬픔이 새삼 안타깝게 다가왔다.
그렇게 한참 동안 교회와 그림과 주변 풍경을 바라보다가
교회 앞에 놓여있는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우리 앞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갔다.
저마다 이어폰을 하나씩 꽂고 가이드를 쫓아가는 우리 나라 단체 관광객들이었다.
프랑스 여행을 다니면서 현지 투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인문학적, 역사적, 예술적 지식을 얻고싶다면
전문가와 함께 하는 투어도 많은 공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나 꽃별이는 공부 보다는 자유를 좋아하는 간세다리들이라
그런 투어는 할 생각조차 안해봤지만...ㅎㅎ
부지런한 그들을 보며 우리도 슬슬 더 가보자며 언덕을 오르니
이렇게 호젓한 길이 나온다.
고흐 그림에도 나오는 오른쪽 길, 즉 마을 공동 묘지로 가는 길이다.
묘지 사진을 찍는다는게 왠지 모르게 죄스러워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묘지에는 많은 무덤들이 있었고 몇 명의 여행자들이 있었는데
다들 고흐 무덤을 찾으려 배회하고 있었다.
두리번 거리던 우리 앞에 아까 그 단체 관광객들이 나타났고
그들을 따라가보니
그 곳에 고흐와 그의 동생이자 평생의 동지, 후원자였던 테오의 무덤이 나란히 있었다.
고흐가 세상을 떠난 몇개월 후 테오 역시 건강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는데
고흐의 작품이 그의 사후에나마 인정받게 된 것은 테오의 아내 덕분이라고 한다.
또 이 곳에 두 사람의 무덤을 나란히 묻은 것 역시 그녀라고 하니
그녀 역시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큰 은인일 것이다.
묘지를 돌아보고 나오는데 점차 빗줄기가 굵어져갔다.
챙겨온 우산을 펴서 꽃별이와 다정하게 함께 쓰고 묘지 앞에 있는 밀밭으로 갔다.
고흐가 생의 막바지에 그린 작품 "까마귀가 나는 밀밭" 의 실제 풍경은
그림 속 풍경과는 달리 아직 익지않은 초록빛 생명력으로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흐리고 비내리는 날씨에 무덤에 다녀온 직후라 그랬는지
아니면 이 곳이 고흐가 권총으로 스스로를 쏘았던 들판으로 추정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싱그러움 보다는 쓸쓸함으로 다가와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하기야 여행이라고 해서 뭐 꼭 늘 즐겁고 기분좋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어차피 여행 역시 삶의 한 부분이라면 오히려 이런 게 더 자연스러운 감정일 지도...
"그 곳에 돌아가 나는 그림에 착수하였다.
붓이 내 손에서 빠져나가려는 것 같았다.
어렵지않게 슬픔과 깊은 고독을 표현했다."
어렵지않게...
다시금 그의 슬픔과 고독이 절절하게 와닿는다.
밀밭을 따라 걷던 우리는
고흐의 슬픔과 고독을 뒤로 하고
좁은 길을 걸어 내려와 오베르 성으로 향했다.
베
오베르 성의 내부는 관람료가 있지만
정원은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화단에 예쁜 꽃들도 피어있고 정원 조성도 잘 되어있는데다
한 쪽에 벤치도 놓여있어 쉬었다 가기에 참 좋았다.
세월의 흔적과 흐린 날씨가 잘 어울렸던 오베르 성.
그러고 보니 여행 중 날씨가 반드시 화창하고 맑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장소들은 흐리고 비오는 날씨가 오히려 더욱 많은 생각과 느낌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니까 말이다.
아무 말도 없이
아무 것도 하지않고 가만히 앉아서
바람과 공기의 숨결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던 오베르 성에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일어섰다.
다시 마을길을 지나 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고흐가 머물렀던 숙소, 라부 여관 앞을 지났다.
3층으로 되어있는 이 건물은 현재 1층은 레스토랑, 3층은 박물관이라는데
고흐가 머물던 방이 그대로 보존되어있다고 한다.
라부여관 건너편에는 고흐가 그린 오베르 시청이 위치하고 있다.
이 앞을 지나는데 거센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
우리는 근방에 있는 고흐 공원과 그 곳에 있다는 고흐의 동상을 미처 보지 못하고
결국 서둘러 기차역으로 향했다.
파리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점점 더 굵어지는 빗방울을 차창 밖으로 내다보고 있노라니
고흐가 죽기 전에 동생 테오에게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슬픔은 영원할 꺼야 "라는 말이 좀처럼 뇌리에서 떠나지않았다.
어떤 종류의 슬픔은 삶이 계속되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커다란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꼭 그만큼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때론 아주 작은 소소한 기쁨들 역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위안이 됨을,
그 덕분에 슬픔을 간직한 채로도 삶은 어떻게든 이어져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베르 쉬르 우아즈 여행에서 만난
고독한 고흐의 삶과 죽음, 그의 작품들, 그들의 무덤
그 모든 것들 역시 내겐 슬픔이고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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