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튼 힐 건너편으로 바라다보이던 노란 꽃이 피어있는 언덕을 찾아가기 위해
우리는 칼튼 힐을 내려왔다.
보이는 것 만큼 가깝지는 않아서
넓은 차도를 건너고 또 공원을 지나 이리저리 가다보니
이런 드넓은 잔디밭이 나왔다.
한 쪽에서는 서너명의 아저씨들이 축구를 하고 있고
또 다른 한 쪽에서는 이렇게 한가롭게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상 살이의 고단함이야 지구 상 어느 곳인들 다르겠냐만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평일 오후의 풍경이라 그런지
부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초록의 싱그러운 언덕 곳곳에 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저 곳이
바로 <아서스 시트>(Arthur's Seat)
이 곳은 350만년전에 분출했던 회산의 일부로
높이는 250미터 정도
아래서부터 길이는 5km라고 한다.
정상 부근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완만한데다가
걷기 좋은 흙길이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가벼운 복장으로 자유롭게 걷고 있었다.
등산이라기보다는 초원을 걷는 것 같은 느낌에
우리도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마음이 들떠서
콧노래가 절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꽃별이는 며칠 후 런던에서 볼 뮤지컬 예습을 시켜준다며
<킹키부츠>와 <위키드>의 줄거리와 대사, 중간중간 삽입된 노래들을 불러가며
나를 괴롭혔다. ㅎㅎ
그래도 덕분에 힘들다고 궁시렁대지 않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
열심히 들어주는 척 하면서 위로~ 위로~~
정말이지 알프스 소녀 하이디라도 된 기분.
이 날 온종일 거의 20km 가까이 걸었는데
신기할 만큼 나도, 꽃별이도 피로감이 느껴지지않았다.
처음부터 "정상까지 가자"하고 걸었으면
앞만 보고 가느라 많은 것을 놓쳤을텐데
이렇게 간세다리처럼 가다 못가면 말고, 가는 데까지 가보지 뭐 하는 맘으로 걷다가
어느 새 정상 부근까지 오게되니 그게 더 좋았던 것 같다.
어쩌면 인생도 그럴 지 모르겠다.
반드시 이걸 이루어야지 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나머지를 다 놓치는 것보다는
정말 좋아서 즐기면서 하다보면 어딘가에 닿게되는 그런 게
더 행복한 거 아닐까?
너무 이상적인 얘기긴 하지만 말이다.
제법 순탄하게 걸어왔는데
저 위로 정상이 보이는 지점 쯤에서 꽃별이가 더 이상 못가겠다며 주저앉았다.
'정상에서 누가 우리를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잠깐 쉬었다 내려가자' 하고
앉아서 쉬다보니 슬금슬금 또 불도저 정신이 살아난다.
저 위에 가면 뭐가 보일까 궁금해서
꽃별이를 앉혀놓고 내가 우리 팀 대표로ㅋ 가보기로~
정상이 거리상으로 멀지는 않았지만
위로 갈수록 바람이 거세고
이제껏 걸어왔던 흙길이 아니라
돌 투성이 길인데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다리가 후들후들.
그래도 앞만 보고 조심조심
네발로 걸어올라가니
정상위엔 달랑 돌덩어리 하나만~
근사한 정상 표지석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워 빙빙 돌다가 다시 하산.
내려갈 때는 올라올 때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기로 하고
호수가 있는 곳으로 방향을 잡고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어갔다.
사실 에든버러에서는 2박3일만 머물렀을 뿐이라
많은 곳을 돌아보지는못했다.
하지만 <아서스 시트>(Arthur's Seat) 한 곳만으로도
에든버러는 충분히 갈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것에 우리는 공감했다.
지구에 온 어린 왕자가 밤 하늘 별을 볼 때마다 두고온 장미를 떠올리는 것처럼
어린 왕자에게 길들여진 여우가 익어가는 밀밭을 바라볼 때마다
어린 왕자의 금발을 떠올리게 된 것처럼
앞으로 노란 꽃을 볼 때면 자연스럽게 떠올리게될 <아서스 시트>,
그리고 그 길 위에서 꽃별이가 들려준 <For Good><Hold me in your heart> 등을 비롯한
뮤지컬 노래들,
초원에 흩어지던 우리 웃음소리.
이 여행이 우리에게 남겨준 소중한 추억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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