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가고 싶은 여행지 1위로 꼽히는
예술과 낭만의 도시 파리지만
솔직히 나는 꽃별이가 유럽의 다른 멋진 국가들을 다 놔두고
왜 하필이면 파리로 유학을 갔을까 내심 원망ㅋ스러울 정도로
파리 여행이 내키지않았다.
그러니 여행 가기 전에 가졌던 기대감이 무너져
다녀온 후에는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는
"파리 신드롬"은 애초부터 나와는 먼 얘기.
하지만, 그런 나조차 절대로 버릴 수 없는
한 조각의 기대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산책.
파리가 얼마나 걷기 좋은 도시인지 익히 들어온데다
내 두 발로 걸은 시간과 공간만이 진짜 내 여행이라고 믿기에
파리에서의 산책에 대한 기대 만큼은 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파리에서 나는
꽃별이의 표현에 따르면 불도저처럼 불도징ㅋㅋ을 하며
수 많은 거리를 걸었다.
실제로 걸어보니
과연 이제껏 들었던 찬사들이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될 만큼
파리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건축물들과
밤이 되면 더욱 빛나는 아름다운 거리의 풍경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심을 걷는 일은
역시나 소음과 많은 사람들과 자동차와 자전거 등 주의해야할 것이 많아서
늘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며칠 지나니 감흥도 별로~
그것이 내가 파리의 거리가 아니라 공원으로 발길을 돌린 이유이고
거리에서 얻지못한 고요와 평온을 나는 공원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곳이 바로 쏘(Sceaux)공원.
가는 방법은 RER B선을 타고 쏘역에서 내려서 조금 걸어야 한다.
쏘역에서 공원에 이르는 길에는
마치 전원마을 처럼 예쁜 집들이 많다.
벽과 담장은 온통 장미 넝쿨로 덮여있고
정원에는 각종 꽃들과 손질 잘 된 잔디가 깔려있는...
그런 집을 보면 자꾸 서성거리게 되고 낮은 담을 넘어 정원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진다.
왠지 그런 집에는 마음 착한 사람이 살고 있어서
정원에 들어오는 것 쯤은 쉽게 봐줄 것도 같은데...
물론, 실제로 무단 침입을 한 적은 없다.
내 옆엔 꽃별이가 혹시 엄마가 무슨 사고치지않나 매의 눈으로 감시를 하고 있었으니까.ㅋ
주택가를 지나 공원에 들어서니
이렇게 울창한 숲이 우리를 맞아줬다.
너무 정형적이고 인공적인 느낌이 들긴 하지만
우리에겐 매우 이색적으로 느껴졌던 나무.
나무 사이를 걸어나오니
거대한 호수가 펼쳐져 있었고
그 옆으로 산책로와 나무들의 행렬이 펼쳐져있었다.
어떻게든 안나가려고 핑계를 대던 나무 늘보의 환생, 꽃별이도
파리와서 가본 공원 중 최고라며 나오길 잘 했다고 자화자찬.
억지로 끌려온 주제에...ㅋㅋ
그냥 생수만 한 병 달랑 들고온 우리와는 달리
잔디밭 위에 피크닉용 담요를 깔고 앉아서
피크닉 박스에서 뭔가를 꺼내 먹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저런 게 진짜 영화 속에서나 보던 파리지엔의 삶인건가
우리는 부러움을 들킬까봐 몰래 힐끔거리며
샌드위치라도 싸올껄 후회했다.
그러다가 호수 앞 벤치에 앉아 쉬고있는데
동네 주민인 듯한 노부부가 스쳐지나갔다.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는데 미소를 건네기에
나 역시 봉주르 읊조리며눈 인사를 건넸는데
지금도 쏘공원을 떠올리면 그 때의 미소가 되살아난다.
여행 중에 보거나 겪는 수많은 풍경과 경험들 중에서
가장 오래 남는 건 역시 그 곳 사람들과 관련된 어떤 이미지인 듯~
따뜻한 햇볕을 쬐며 자는 건지 조는 건지
아니면 알이라도 품고 있는 건지 모를 청둥오리?가 보이길래
새를 사랑하는 꽃별이를 위해 한 컷.
공원 입구에서 볼 때는 잘 몰랐는데
쏘공원의 호수는 제법 컸는데
공원 전체의 면적이 무려 180 ha라고....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도 거의 없고
그야말로 정적과 고요함의 끝판왕이었던 <쏘공원>
호숫가 한 가운데 있던 분수대를 지나
계단을 오르니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인다는 쏘 성이 있었고
그 뒤편에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 곳은 17세기말에
베르사유 정원을 만든 앙드레 르 노트르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딱 봐도 정확하고 기하학적으로 만들어진 전형적인 프랑스 공원 느낌으로
"작은 베르사유 정원"라는 별칭이 이해가 갔다.
공원 내에서는 산책하는 사람들을 별로 만나지 못했는데
공원 내에 야외 카페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잡은 울창한 나무들과 수 많은 조각상들,
바람에 살랑살랑 일렁이는 호수의 잔물결과 그 위를 유영하던 새들,
걷다 지치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벤치와 드넓은 잔디밭.
쏘공원을 비롯해 파리의 여러 공원을 걷다보면
산책이 그들의 일상임을 깨닫게되고
프랑스가 그토록 위대한 예술가와 철학자들을 낳은 것이
산책 문화와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객관적인 근거는 없다. ㅋㅋ
기껏 여행가서 공원엘 갔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여행지에 대한 취향은 제각각이라 권하기 조심스럽지만,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이미 익숙한, 잘 알고있는 곳들을 직접 보는데만 있는 건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곳이다.
특히, 사람이나 세상에 대한 피로감이 극에 달해
자기만의 방으로 들어가고 싶은 여행자라면
샌드위치와 생수 한 통,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게 해줄 음악과 책 한 권 정도를 챙겨
여길 간다면 정말 찐한 힐링을 받고 올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