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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미항인 시드니에는

아름다운 비치들이 정말 많아요.

해안 도로 쪽으로 드라이브를 하거나

와프에서 페리를 타면 닿을 수 있는

수많은 비치들.

 

그 중에서도 이 날 제가 다녀온 팜비치는

두 갈래로 갈라진 멋진 바다를 볼 수 있고

또 해변에서 20여분 정도만 걸어올라가면

아름다운 풍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바렌조이 등대 언덕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곳이예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려면

윈야드역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넘게 가야한다는데

다행히 이 날 제 친구가 쉬는 날이라

저는 친구 차를 타고 편안하게 이동했어요.

 

함께 가긴 했지만

친구와 제가 비치를 찾은 이유는제각각 달랐는데요

친구는 바닷 바람을 쐬면서 낮잠을 자는 게 목적이었고

저는 늘 그렇듯 걷는 게 목적이었지요.

 

 

팜비치 가는 길에 먼저 들른 곳은

웨일 비치(Whale beach)인데

친구가 낮잠 자러 자주 오던 곳이라고 해요.

바닷가에 나무 그늘도 있고

잔디밭도 있어서

파도 소리 들으면서 잠자기엔 최적의 공간이더라고요.

 

 

한적한 바닷가 저 멀리에서

몇 명의 서퍼들이 서핑을 하고 있었는데

무척이나 평화로운 곳이었어요.

이미 졸음이 밀려온 친구는

잔디밭 위에 돗자리를 깔고 잠이 들었고

저는 산책을 떠났어요.

 

 

비치를 따라 오른쪽 끝으로 걷다보니

이렇게 락풀이 있었는데

평일 인데다 아직은 충분히 더운 날씨가 아니라서 그런지

이용객은 딸랑 두사람.

 

한 시간쯤 자고 일어난

친구와 함께 오늘의 목적지인 팜비치로 향했어요.

한낮이라 햇빛이 제법 강했는데

휴식이 필요했던 친구는 또다시 그늘을 찾아 돗자리를 깔고 잠이 들었고

저는 바렌조이 등대를 향해 출발했어요.

 

 

땡볕에 모래사장을 지나 오르막길을 올라야 하는 여정이긴 했지만

구간이 짧아서 걸을 만 했어요.

비치를 따라 걷다가 숲길로 접어드니 갈림길이 나타났는데

둘 다 바렌조이 등대로 오를 수 있는 길이지만

한 쪽 길은 조금 어려운 코스라고 하고

다른 쪽 길은 쉬운 코스라고 적혀있더라고요.

올라갈 때 조금 어려운 코스로 가자 마음 먹고 그리로 걸어갔습니다.

 

 

계단이 조금 가파르긴 하지만

웬트워스 폭포 트래킹때 걸었던 수직 계단에 비하면 이 정도야 식은 죽 먹기.

20분쯤 걸어서 정상에 오르니  정상에 오르니 이렇게 예쁜 등대가 눈 앞에 나타났어요.

 

 

등대 안에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등대 주변을 걸으며 아래를 내려다 보니

이렇게 육지를 가운데 두고

두 갈래로 갈라진 신비한 바다의 모습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어요.

 

 

왕복 50분 정도면 다녀올 수 있는 가벼운 트래킹 코스지만

처음에는 직사광선이 내리쬐이는 비치를 통과해야 해서

한 여름 날씨에는 조금 힘들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저 위 높은 곳에 오르면

그 동안 흘린 모든 땀과 노고를 보상해주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니

그걸 기대하면서 즐겁게 걸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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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마트료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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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도시인 시드니에는 페리를 이용해 쉽게 갈 수 있는 비치들이 많은데요

대표적인 곳이 지난 번에 포스팅한 서퍼들의 천국, 본다이 비치와

이번에 소개할 맨리 비치입니다.

 

맨리 비치로 가는 페리는

써큘라 퀴 와프에서 1시간에 한 대 정도가 있고

소요 시간은 30분이예요.

제가 이 곳에 갔던 12월초에 시드니 날씨는 

변덕스럽기가 정말 팥죽 같더라고요.

아침에 나설 때만해도 햇빛이 쨍쨍하더니 어느새 흐려지고

잠시 해가 나왔다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고...

이 날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온종일 종잡을 수 없는 날씨 탓에

길을 가다 여러번 멈춰서야 했어요.

 

 

맨리 비치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라서인지

선착장 출구에서부터 식당과 마트가 양옆으로 즐비하게 늘어서있고

편의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어요.

비치지만 트래킹 코스도 잘 닦여져 있어서

해안을 끼고 걷는 코스는 물론, 숲길을 지나는 구간 

짧은 시간 동안 걸을 수 있는 구간, 다소 긴 시간이 소요되는 구간 등

아주 다양한 코스들이 있지요.  

선택의 폭이 너무 넓어 결정 장애를 겪던 저는

어디로 가야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일단은 비치쪽으로 가보기로 했어요.

 

시드니에 와서 처음 트래킹을 다닐 때만 해도

가기 전에 안내도를 보면서 모의 주행?을 해보고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다녔는데

어느 날인가부터 그냥 걷게 되더라고요.

어차피 길은 다 통하게 마련이고

때론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들어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비치 쪽으로 길을 가다보니 이렇게 장대한 나무들이

해변 가에 심어져있었어요.

이 날 날씨가 너무 흐리고 파도도 높아서 서핑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는데

해안을 따라 이어진 길을 걷는 짧은 동안에도

하늘이 일순간에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시시각각 달라지던 날씨와 하늘이 심상치않던 중에

해변가 산책로 앞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더라고요.

다행히 바로 앞에 카페가 있길래

가던 길을 멈추고 카페 앞 테라스에 앉아 롱블랙을 마셨지요.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도

빗방울이 굵어졌다 잦아들었다

날이 환해졌다 어두워졌다 했는데

그게 또 나름 신비감있고 운치 있어서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봤어요.

 

 

그 때 제 눈길을 사로잡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카페 앞 해변 벽?에 걸터앉아 있던 이 여성분과

그녀와 일행인 듯 굵은 빗방울 속에서 여전히 서핑을 즐기는 서퍼들이요.

그 분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자유를 느끼는 방식이나 삶을 견디는 방식은

사람마다 제각각 무척이나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에 대해 파도가 저렇게 거센데 이런 날 서핑을 왜 하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이런 날씨에 왜 기를 쓰고 혼자 걸어다니는지 저를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도 있을테니

과연 누가 누구를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그러면서 신영복 선생님이 말씀하신 "인간 관계의 최고 지향은 공감"이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서로의 행동에 대해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삶을 견뎌내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쉽게 공감할 수 있을테니까요. 

 

 

그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비도 멎었고

다시 길을 나서서 걷다보니 이렇게 근사한 락풀이 나타났어요. 

수영장 처럼 안전하면서도 바다를 바라보면서 바닷물로 수영할 수 있는 락풀.

시드니 비치쪽에 가면 자주 볼 수 있으니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락풀을 이용해 보세요.

 

 

 이 쪽 지역이 특히 자연 보존에 신경을 쓰는 건지

아니면 그만큼 많이 파괴되었다는 방증인지 모르겠지만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니

이 곳에 살고 있거나 희귀해진 생물들의 조각상들이 이어졌어요.

 

 

조각들을 구경하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셜리 비치


 

작고 아기자기한 느낌의 비치인데

이 곳을 지나 언덕을 오르니 전망대가 있더라고요.

 

 

아래를 내려다보기도 하고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이어지는 길로 계속 걸었지요.

 

 

이 부근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제법 있었는데

숲길로 들어서면서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더라고요.

 

 

살짝 불안했는데 다행히 저 앞에 혼자 걸어가는 여성 분이 보이길래

안심하고 따라갔어요.

 

 

그런데 갈림길에서 그녀나 나나 도무지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헤매다보니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되었고 동행이 되었어요.

제 짧은 영어로 알아낸 그녀의 신상 명세는

그녀는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미국인인데

출장 차 시드니에 온 남편과 함께 일주일간 여행중이래요.

그녀의 남편은 낮엔 일을 해야하기때문에 낮에는 그녀 혼자 시간을 보내는데

이런 숲길쯤은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말할 만큼 트래킹을 좋아하는 용감한 여자였어요.

하지만 그녀에 대해 제가 느낀 가장 큰 놀라움과 경외감은

제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 하는 그것을 그녀는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사실이었는데요  

그것은 바로~

배암!!!

 

우리 둘이 다정하게 산길을 오르는데

한쪽 구석에 갈색 뱀이 떡하니 또아리를 틀고 있었어요.

너무 놀라 발걸음이 절로 멈춰진 나와

나 만큼이나 놀라 꼿꼿하게 경직된 뱀과는 달리

그녀는 귀엽다!!!며  조심스레 다가가 뱀의 독사진을 찍더라고요.

뱀의 머리 모양을 보니 둥그스름한 게 독사는 아닌 게 분명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 징그러운 뱀을 저렇게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볼 수 있다니...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고 길을 가는데 이번엔 도마뱀이 불쑥 나타났어요.

레인코브 국립공원에서 봤던 것 만큼이나 커다란 그 도마뱀을

그녀는 마치 아이가 잠 든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처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더군요.

동물들을 좋아하냐고 했더니 정말 사랑한다며

천진하게 웃었어요. 

그야말로 두리틀 박사도 울고갈 동물 애호가.

레인코브 국립공원에 가면 이런 아이들 천마리라도 볼 수 있으니

꼭 가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영어가 짧아 패스~

 

 

이러다가 곧 저 멀리 호수 비슷한 곳에서

악어도 몇 마리 나오는게 아닐까 걱정될 무렵

다행히 우리의 여정은 끝이 났고

길이 끝난 곳에서 우리는 "We did it."을 함께 외쳤어요.

그리고 와프까지 함께 걸어오면서 되는대로 대화를 나눴지요.

 

이번 호주 여행에서 제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언어는 문법적으로 완전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말만 통하면 된다는 사실이예요. 

예전엔 머릿 속으로 미리 문법 오류를 체크하면서 말을 하려니

말이 머릿 속에서만 맴돌뿐 밖으로 터져 나오지 않았는데

이번 여행에선 '니가 알아들으면 다행이지만

못알아들어도 그건 니 한국말 실력이 부족한 걸 

내가 영어로 혼자 메꾸려니 그런거니까 니가 이해해라

그나마 내가 이 정도 영어를 하니 우리가 대화할 수 있는 거니까 감사하고...'

물론, 실제로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ㅋ 이런 자세로 대화를 하니 한결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다만 말이 자주 막히고 더듬게 되는 것 까지는 어쩔 수 없었지만

단어 몇개에 손짓, 발짓이면 기본적인 대화는 어쨌든 통한다는 깨달음은

제게 큰 용기를 주었지요.

 

우리 화제는 그야말로 중구난방이었어요.

한국 날씨에서부터 얼마 전 캘리포니아에서 있었던 대형 산불을 비롯헤

시드니 여행에 대한 것 등등

역시나 그녀는 모험을 사랑하는 여행자답게 이 날  저녁에

남편과 시드니 하버브리지 크라이밍을 하기로 했다며

너무 재밌을 것 같다고 기대가 크더라고요.

돈을 준다고해도 그 높은 곳엘, 그 이상한 옷을 입고 올라갈 맘이 없는 저로선

1인당 20만원 넘는 돈을 주고 그 고생을 사서 한다는 그녀가 심히 존경스럽기까지~

 

 

그렇게 와프까지 걸어오는데 어떤 세탁소 앞에서

무슨 일때문인지 몹시 열 받은 어떤 아저씨가 웃옷을 벗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기 웃옷을 막 터는 시늉을 하고 있었어요.

기가 막혀 웃는 나와는 달리 그녀는 진심 공포에 질린 표정.

사람마다 자유를 느끼는 포인트 만큼이나

공포를 느끼는 대상 역시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이번엔 내가 그녀를 안심시켰어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정말 무서운 건 역시 사람이지요.

동물은 자기 보호 본능에 의해서만 공격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타인에게 얼마든지 폭력적일 수 있으니까요.

 

어색할 것 같았지만

하나도 어색하지 않게 우리는 와프까지 걸어왔고

유감스럽게도 목적지가 달랐던 관계로

거기서 서로 다른 배를 타며 자연스럽게 안녕을 고했어요.

 


그녀와 헤어져 페리를 타고 오며

저는 이번 여행에서 길 위에서 만난 인연들에 대해 생각했어요.

죽는 날까지 다시 만날 일이 없을,

설령 다시 만난다고 해도 이미 얼굴조차 희미해진 그녀를 비롯해

이번 여행에서 스쳐간 많은 사람들.

아주 잠깐이지만 길 위의 동반자가 되어

내게 길을 계속 갈 수 있는 용기를 주고 동행이 되어준 그들은

어쩌면 먼 곳에서부터 내게 보내진 선물일지도 모르지요. 

그들이 내게 고맙고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처럼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기억으로 남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2018/04/30 - 길에서 길을 묻다 3 - 도마뱀들의 천국 <레인코브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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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마트료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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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시드니에 있는 동안 친구 차를 타고 시내에 나갔다 올 때마다

지나던 10차선 대로가 있는데

그 길 양 옆으로 정글같은 숲이 쭉 펼쳐져 있어서 항상 눈길이 갔어요.

게다가 그 숲 속 나무 일부가 시커멓게 숯이 되어있길래 친구에게 물어보니

몇년 전에 산불이 나서 탔다고 해요.

호주는 나무들이 많고 공기가 건조한 편이라 산불이 잦은 편이라는데

도심 한가운데에 울창한 밀림 같은 곳이 있다니

볼 때마다 신기했어요.

궁금한 건 절대 못참는 저는 그래서 그 곳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 곳은 <레인코브 국립공원>인데

피크닉이나 트래킹 하기 좋은 곳이라기에

또다시 트래킹을 떠나기로 결심했어요.

 

오팔앱을 검색해보니

친구 집에서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면 입구까지 50분

걸어가면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기에

걸어서 가려고 길을 나섰어요.

 

구글맵을 켜고 걸으니

처음엔 도로변이 아닌 주택가 근처 골목을 따라 가더라고요.

길 위에 피어있는 꽃들이며

예쁜 집들 사이를 걷다보니

동네 주민들이 이용하는 드넓은 골프장도 나오고

한적하고 조용해서 참 좋았어요.

하지만, 곧 주택가에서 벗어나 차들이 다니는 큰 길가로 나가야했는데

문제는 4차선 도로 옆에 인도가 제대로 분리되어있지 않았다는 거죠.  

쌩쌩 달리는 차옆을 걷자니 위협감도 느껴지고

차라리 버스를 탈 걸 그랬나 살짝 후회가 밀려왔어요.

그러면서도 제 왼편에는 정글 같은 숲이,

오른 편에는 차도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더라고요.

도대체 이 길 끝에 뭐가 나올까 궁금해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레인코브 국립 공원에 도착했어요.

 

 

레인코브 국립공원은 워낙 넓어서

출입구도 여러 군데인데

 

 

대자연의 나라 호주답게  

스케일이 다르더라고요.

어떻게 주택가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도심 한 가운데에 이런 곳이 다 있나 싶게

정글 한 가운데 들어와 있는 느낌이예요.

게다가 곳곳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바베큐 시설이나 의자와 식탁도 잘 갖추어져 있고

자전거나 보트를 빌려탈 수 있는 곳들도 많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지요.

주말이라 그런지 공원 곳곳 피크닉 장소에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온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더라고요.

 

 

피크닉이 아니라 트래킹이 목적인 저는

트래킹 경로를 따라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이 때 제 눈에 띄었던 바로 이 녀석.

이제껏 시드니에서 자주 봤던 귀여운 도마뱀들과는

크기와 색깔이 확연히 다르더라고요.

이 때만 해도 한 두마리 정도만 보이길래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고 '역시 호주야' 하면서 여유있게 지나쳤지요.

 

 

<레이코브 국립공원> 역시  트래킹 코스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졌는데

저는 안내도에 나와있던 대로 강을 따라 쭉 이어지는

리버 워크 코스를 따라 걷기로 했어요.

 

 

파란 하늘과 푸른 물빛

햇빛에 빛나는 푸른 잎사귀들이 정말 아름답고 평화로운 휴일의 오후였지요.

강가를 끼고 계속 이어지는 숲길을 들어설수록

점차 오가는 인적이 드물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계속 나오니 걸음을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보다 더 자주 저를 놀라게 한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도마뱀들!

 

 

도마뱀은 독이 없으니 괜찮다고 스스로를 진정시키면서도

생긴 것과는 달리 이 아이들이 어찌나 재빠른지

고요한 숲 속에서 후다닥 후다닥 거리며 왔다갔다 하는 소리와 모습에

슬슬 두려움이 느껴지더라고요.

이러다 '뱀도 나오는 거 아냐'하는 생각이 들자

오기 전 읽었던 호주 관련 책에서

호주에 얼마나 무서운 독사가 많은지 설명한 내용이

전광석화처럼 떠오르면서 되돌아가야하나 망설여질 정도 였어요.

 

마침 그 때 짜잔~

제 뒷쪽에서 중국인 부부가 나타나더니 저를 앞질러 걷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되면 얘기가 달라지지요.

혼자이되 혼자가 아니니까요.

아무리 말이 안통한다고 해도

만약 제가 독사에게 물리면 최소한 구급대는 불러주지 않을까 안심이 되길래

적당히 거리를 두고 그들 부부를 따라걷기 시작했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니

시드니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려면 반드시 갖춰야 할 게 하나있는데

그게 바로 자연에 대한 친밀감이예요.

자연은 물론, 경우에 따라 두려운 존재고

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기때문에 조심해야하지만

그것이 지나친 걱정과 자기 방어로 이어지면

절대로 진짜 자연을 만날 수가 없으니까요.

 

중국인 부부를 따라가면서

그들 덕분에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보게된 것이 정말 고맙게 느껴졌어요.

포기하지 않고 따라오길 정말 잘 했다고 생각될 무렵

앞서 가던 두 사람이 강 한 켠에 있는 벤치에 앉더라고요.

아, 이건 아닌데...ㅠㅠ

 

이 때가 사드 때문에 대중국 감정이 몹시 좋지 않은 시기였는데

제가 그들을 따라서 거기 앉으면

뭔가 그들에게 밀리는 듯한,

대한민국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듯한 죄책감?ㅋ때문에

도저히 거기서 같이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해외에 나오면 다들 애국자가 된다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이제껏 당신들을 따라온 게 아니라 우연히 방향이 같았을 뿐이라는 듯

태연하게 인생은 직진,

무조건 직진을 외치면서 가던 길을 계속 갔지요.

 

 

본격적인 트래킹 경로가 시작되어서인지

앞에도 뒤에도 오가는 사람이 없는데

이번에는 정말 감당하기 힘든 수풀이 나오더라고요.

아무래도 저 수풀 속에 독사 열마리는 또아리 틀고 있을 듯해

아, 내 인생에 후진은 없는데

결국 이렇게 뒤돌아서야만 하는가 갈등을 하며 서 있는데....

 

뒷쪽에서 빠른 걸음으로 나타난 백인 청년.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를 한 번 휙 쳐다보더니 읊조리듯 "하이"하고는

제 앞을 지나쳐 거침없이 수풀 길을 걸어가더라고요.

반바지에 긴 팔 티셔츠.

이런 수풀 속을 저런 복장으로?

뱀한테 물릴까봐 걱정도 안되나??

걱정도 잠시.

저런 복장으로 휴일에 트래킹 온 청년이 절대 나쁜 사람일 리가 없다는

나름의 논리적? 판단을 마치고 바로 뒤따라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아무도 없는 숲길을 그 청년과

5미터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면 걷기 시작했는데

그 와중에도 후두둑 후두둑 길 위로 출몰하던 도마뱀들.

행여라도 내 발등 위로 떨어질까 두려워하며

롱다리 청년의 보폭을 쫓아 부지런히 걸었지요.

 

그런데...

앞에서 걷던 그 청년이 갑자기 뒤를 돌아 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웁스~뭐지?' 하며 얼음 땡하고 멈춰 섰는데

내 곁을 스쳐지나가더라고요.

차마 같이 후진하지는 못하고 그냥 내쳐 걷는데

'뭐지, 저 청년, 왜 되돌아 갈까 혹시 독사라도 봤나'

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조금 걷다가 살짝 뒤를 돌아보니 일기라도 쓰는지

호숫가에 앉아 다이어리 같은 걸 펴고 글을 쓰는 게 보였어요.

'작간가? 갑자기 무슨 영감이라도??' 생각하며

망설이다 그냥 앞으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후두둑 후두둑

너무 무서워서 제대로 확인조차 못했지만

일반 도마뱀이 아니라 왕도마뱀 정도의 어마어마한 크기의 동물이 낼 법한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호들갑 섞인 비명이 터져 나왔고

너무 무서워 반사적으로 뒤돌아 달렸어요.

그 청년은 제 비명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저만치에서 여전히 무언가를 쓰고 있었고

앞으로도 뒤로도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던 저는

친구와 000(호주 비상전화) 중 어디로 전화하는게 나을까 고민에 빠졌지요.

 

그렇게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빨리 뛰는 와중에

판단을 못내리고 서있는데

아까 그 청년이 다시 제 앞을 걸어가더라고요.

유일한 구원의 끈이라 생각한 저는 용기를 내서

"나는 도마뱀이 무서워서 못가고 있다. 너를 뒤에서 따라가도 괜찮겠니?"라고 물었지요.

쿨하게 전혀 상관없다고해 결국 그 청년과 저는

전적으로 저의 필요에 의해 동행이 되었어요.

역시나 어색한 침묵을 못참는 내 본성이 어디 가나요?

안타깝게도 그 청년은 한국말을 못하기때문에

어설프고 짧은 영어나마  구사하는 저 덕분에ㅋ 이런 저런 대화가 오갔지요.

 

 

그 청년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된 사실을 종합해보면

그는 캐나다 사람이고 아마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

한국에 온 적이 있고 북한산 등반을 한 적이 있는데

등산이나 트래킹을 무척 좋아한다고 해요.

직업상 여러 나라를 여행한 경험이 있고

현재는 시드니 시티에 있는 백화점에서 일하고 있대요.

한국 음식 중 코리안 바베큐를 좋아하고

동물 특히 도마뱀을 사랑하는데

특히 도마뱀이 수영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절대로 나쁜 사람일 리가 없지요.

 

그 청년의 결정적인 장점은....

말수는 적지만 남의 어려움을 지나치지 못한다는 것.

열심히 뒤에서 쫓아가던 제게

앞으로 "우리"가 어떤 코스로 걸을 예정이며

역까지는 어떻게 이어지는지 지도를 보여주며 자세히 설명해주더라고요.

혼자서 하는 트래킹의 즐거움을 아는 저로서는

그 청년에게 너무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그냥 가까운 도로가 나오면 트래킹을 그만두고 그리로 나가겠다고 하니

그 길에 대한 안내도 해주었어요.

 

내가 5년만 일찍 결혼했어도 저런 아들이 있었을텐데...

든든하면서도 고마웠던 청년이지요.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혼자서도 잘 하는 걸 스스로에게 입증하기 좋아하는 제게

이 날의 경험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는데요...

 

역시 사람은 혼자 살기 힘들죠.

아무리 폐끼치지 않고 독야청청하며 살아야지 생각해도

느닷없이 이렇게 누군가의 도움이 절박한 순간이 오고요.

이제껏 살면서 딱히 누군가를 도와줘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우연히 길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청년이

저를 도와줬다는 사실이 정말 오랫동안 고마움으로 남네요.

비록 이름도 모르고 지금은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언젠가 그가 한국에 오거나 또 한국에 관한 소식을 들을 때면

트래킹 중에 만났던 도마뱀이 무서워 오도가도 못하던 아줌마를

좋은 기억으로 떠올려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 청년을 비롯해

시드니에서 오며 가며 만난 사람들을 통해 제가 깨닫게 된 사실은

국적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언어가 달라도

기본적인 매너를 보거나 아주 간단한 대화 몇 마디만 나눠봐도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과 그 사람의 지적 수준을 어느 정도는 판단할 수 있다는 거예요.

흔히 오십 이후의 얼굴이 그가 이제껏 살아온 인생을 말해준다고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내가 하는 말 한마디나 태도 혹은 무심히 하는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이제껏 살아온 인생 여정이나 내 인격을 드러낸다는 생각이 들면서

새삼 품행을 방정히ㅋㅋ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이 날 얻은 무엇보다도 가장 큰 수확은  

세상에는 확실히 나쁜 사람들 보다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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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마트료시카